하늘(4)
탁하고 어두움의 극치를 혼돈(混沌)이라고 한다면, 맑고 밝음의 극치를 성(性)이라고 한다. 성(性)은 모든 것을 들어내고 제자리를 지키게 한다. 맑고 밝기 때문에 해ㆍ별ㆍ땅 등 만물만상(萬物萬象)을 명확히 구별되게 하고, 구별되기 때문에 각기 역할(사명)이 주어진다.
만물만상이 없는 지극히 맑고 밝고 투명한 상태를 일컬어 성(性)이라고 하는데, 그 성(性)이 있기 때문에 만물만상이 들어나는 것이므로 성(性)은 모든 것의 근본(根本)이다.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가장 빨리 법을 배우는 방법은 각 개념들의 성질(性質) 또는 특성(特性)을 이해하는 것인데, 가령 공법(公法)과 사법(私法)을 이해하려면 공법과 사법의 성격(性格)을 명확히 분석ㆍ규명하면 된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수사관이 범죄를 수사할 때 범인의 성격(性格)을 잘 분석ㆍ파악하는 것이 사건을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다. 물증을 통해서 법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규명해내면 이미 반쯤 범인을 찾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중매를 하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甲이라는 사람을 이해시키는 방법은 바로 그 사람의 성격을 설명하면 비교적 그 실체를 정확하고 쉽게 전달할 수 있다.
동ㆍ식물의 성분(性分)을 잘 분석해내면 그 성분을 이용하여 사람이나 동ㆍ식물을 치료할 수 있는 의약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최근 TV에서 사극을 주제로 한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저가 가장 관심있게 보았던 것은 불멸의 이순신, 허준, 대장금 등이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한결 같이 자신이 맡은 직분 즉 주어진 사명(역할)에 충실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가령 이순신 장군의 경우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조선의 통치권을 뒤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죽음까지 감내하며 끝까지 직분에 충실하였다. 즉 본성(本性)ㆍ천성(天性)을 있는 그대로 실천한 하늘 사람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 중에 “선생이 선생다워야 하고”, “군인이 군인다워야 하고”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선생이 선생의 본분을 잃었다는 소리이고 군인이 군인의 본분을 잃었다는 소리이다. 말하자면 모두들 본성 즉 천성을 잃었다는 소리인데, 그동안 우리는 그렇게 자기 직분을 이탈한 사람들로 인하여 너무나 많은 혼란(혼돈)을 겪었다.
그러나 지금 그 혼란이 그친 것이 아니다. 지금도 사회 곳곳이 그런 사람들로 가득차있다. 그런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도 세상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그렇게 장난을 치는 사람들의 뒷처리까지 담당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우리는 甲이라는 사람에 대하여 얘기할 때 그 사람의 천성(天性)이 착하다ㆍ사납다고 하거나 급하다ㆍ게으르다 등으로 표현한다. 천성(天性)의 본래 뜻은 하늘의 성품을 말하는 것인데, 만물만상을 표현할 때 그것의 천성을 묻는 것은 하늘이 준 성품이라는 뜻이다. 만물만상이 하늘에 바탕을 두지 않은 것이 없으므로 만물만상의 성(性)은 곧 하늘인 것이다.
유사한 말로 “甲이라는 사람이 천수(天壽)를 살다 갔습니다”라고 말할 때 천수도 하늘이 준 수명이라는 소리로서 하늘 자체의 수는 영생불멸(永生不滅)하는 존재이지만 그 밖의 존재는 영원한 근본(바탕)이 있음으로 해서 존재하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만물만상을 이해하려면 그 성질이나 특성을 이해하면 되는데, 그 성질이나 특성은 하늘의 성(性)에서 나온 것이다. 즉 하늘은 모든 성(性)의 기본ㆍ바탕ㆍ근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성을 아는 것은 자신을 아는 것이며, 이 세상에서 태어난 자신의 사명(역할)을 아는 것이며, 사물ㆍ사건의 본체를 아는 것이다.
작고한 성철 스님이 말씀하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얘기나 “사창가에서 몸을 파는 부처님,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부처님…, 오늘은 그대들의 날이니…” 등등의 법어가 마음에 와 닿는다면 이제 여러분도 어느 정도 성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불가에서 견성(見性)하라는 말은 결국 참 “나”의 근본ㆍ바탕을 알라고 하는 소리이며, 육신의 바탕이 되는 근본이 참 “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며, 바꾸어 표현하면 하늘을 알라고 하는 말과 같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맑고 밝음을 강조하니까 재물에 대하여 ‘내 것’, ‘네 것’을 철저히 가리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명(역할)의 구분과 재물의 구분은 다른 것이다.
사람의 몸에는 눈ㆍ귀ㆍ코ㆍ입ㆍ손ㆍ발ㆍ오장육부가 나뉘어져 각기 그 사명(역할)을 다할 때 건강하고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만 만약 간장 또는 눈 등 어느 하나가 기능을 상실하면 내 육신이 전체가 죽을 수밖에 없거나 다른 것이 상실된 것의 기능을 대체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맑음과 밝음은 이와 같이 각기 자기 사명(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지만, 한편 눈ㆍ귀ㆍ코ㆍ입ㆍ손ㆍ발ㆍ오장육부가 각기 자기 사명(역할)을 다하려면 충분한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으면 아니 되는데, 재물이란 그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과 같은 것이다.
세상에는 별의 별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가령 청소부가 있기 때문에 거리나 직장 등이 깨끗하고, 시체를 다루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부모님의 장례도 치를 수 있는 것과 같이, 머리 역할을 하는 정치인들로부터 배설구의 역할을 하는 청소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어떤 사람도 자기 직분에 충실하게 하려면 먹고살 수 있도록 해주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것이 재물을 나누는 이치이며, 넓게 보면 모두 자신을 위한 것이며, 더 크게 보면 하늘의 마음인 것이다.
따라서 재물을 나누되 사명도 모르는 사람에게 무조건적으로 베푸는 것은 아니 되며, 그렇다고 고아와 같은 어리고 힘없는 애들에게 일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 된다. 열심히 살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다름이 없으며, 어린 아이에게 사명을 가르치는 수준을 넘어 일을 강요하는 것은 착취 또는 학대에 해당한다.
사람마다 사명이 없는 사람이 없으므로 예로부터 일(노동)하는 사람을 신성시 여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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